[110103] 스파르타4주 이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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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솔교사 작성일11-01-03 09:39 조회650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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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솔교사 이지윤입니다. 오늘 첫 일기를 씁니다. 기다리셨죠!
1월 2일 10시 비행기로 출발해 필리핀에 도착한 후 자기들은 피곤하지 않다고, 밤을 새겠다고 고집 아닌 고집을 부리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은 제가 간단히 세수를 하고 나온 그 짧은 새에 조용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전 날 비행기에서 4시간을 보낸 후 각종 수속을 마치고 피곤하였을텐데 피곤한 기색보다는 새로운 친구, 새로운 공간, 새로이 보낼 한 달 간의 시간들을 기대하고 반기며 즐거워하는 파릇파릇함이 참으로 보기 좋아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아무래도 모두들 공부도 놀기도 열심히 하기에 모자라지 않는 강철 체력을 지닌 것만 같아요.
저도 아이들을 알아갈겸, 아이들끼리도 서로를 알아가는 시작으로 삼을겸 아이들에게 자기 소개를 시키고 한 줄씩이라도 좋으니 짧게나마 인삿말을 덧붙이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얼굴도 잘 못 들고 속삭이듯 자기 이름을 말하고 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순식간에 친해졌습니다. 같은 방을 쓰는 동갑내기들끼리는 물론, 한 빌라에서 지내게 될 모두가 벌써부터 끊임없이 다양한 화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참으로 신기하죠, 공항에서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만 해도 어색하게 쭈뼛거리는 모습이 보이던 아이들이 탑승구, 비행기 안에서부터 서서히 친분을 쌓고 우정을 길러내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4주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난 후에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있을지, 자기와 이제껏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으나 이번에만은 같은 환경에 놓이게 된 아이들이 서로와 부대끼며 얼마나 옳고 넓은 그릇으로 성장해있을 지 괜시리 앞서 기대하게 되는 면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전날 새벽에 비행기가 도착한 점을 고려하여 오늘 기상 시간은 아침 9시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깨우기도 전에,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혼자 힘으로 벌떡 일어나 알아서 세수를 하고 하루 준비를 마쳤습니다. 여간 기특한 게 아니었어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이들과 한 달 간 일대일 수업을 함께하게 될 필리핀 현지 원어민 선생님들이 강당에서 자기 소개를 하셨고, 아이들은 한 분 한 분이 자신의 이름과 담당 과목을 소개할 때마다 미소 가득한 얼굴로 선생님들을 박수와 함께 맞았습니다.
오늘은 여독을 풀기 위해 오리엔테이션과 레벨 테스트 외에는 딱히 큰 스케줄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레벨 테스트는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시간 겸 점심시간을 가졌다가 탁자에 둥그렇게 모여서 열심히 보았습니다.
그 후 연락을 받고 speaking test 를 보러 시험 장소로 결정된 빌라로 이동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원어민 교사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생각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만, 면접식의 시험을 마치고 나와 선생님들의 질문이 뭐였는지 질문을 나누고 자신들의 대답을 비교해보는 얼굴들은 역시 밝았습니다.
재령이는 단연 분위기 메이커입니다. 질문도 많고, 말할 거리도 많으면서 정작 아이들이 뭐하고 놀까하고 의견을 나누다 그냥 얘기나 하자고 하면 이야기는 재미가 없어서 싫다고 하니 앙큼한 귀염둥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함께 방을 쓰는 동갑내기 친구들 3명과 꼭 붙어다니면서 레벨 테스트 얘기도 하고, 앞으로 보낼 액티비티 중 뭐가 가장 재밌을 지 궁금해하기도 하고, 참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하루를 알차고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벌써 한국밥이 그립다고, 한국 음식이 세계에서 제일 맛있다고 통통 튀어다니며 라면송이라는 노래까지 친구들과 목청껏 불러댔습니다.
하림이는 가끔가다 터트리는 한 방으로 아이들과 저를 폭소의 도가니로 밀어넣습니다. 큰언니같은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샤워기 사용법도 친구들에게 일러주고, 큰소리로 재잘대는 일 없이도 고유한 개성과 존재감이 뚜렷한 아이라 챙겨주고 관심과 함께 지켜보고 있습니다. 제 뒤에서 지원이와 해리 포터 얘기를 열심히 하고 있네요.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을 잘 못잔다고 하길래 걱정했는데 우려했던 것과 달리 잘 자서 한시름 놓았습니다. 아, 하림이의 영어 이름은 Harim 으로 바뀌었습니다. 줄리아라는 이름을 쓰는 학생이 한 명 더 있었는데 하림이가 고맙고 착하게도 이름을 바꾸어도 괜찮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다행히 한국 이름이 외국인 선생님들의 발음이나 표기에 어렵지 않은 둥근 이름이라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줄리아 로버츠는 이미 닮았으니 어머니께서 하림이의 어여쁜 넓은 마음 칭찬해주세요.
지원이는 물 흐르듯 친구들과 잘 섞여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안경 벗은 얼굴이 아역배우를 해도 될만큼 너무 예쁘더라구요. 혼자서 썬크림도 잘 챙겨 바르고, 짐도 꼼꼼하고 깨끗하게 잘 챙겨서 제가 더 챙겨줄게 있나.. 싶을 정도로 야무지게 자기 자신을 잘 돌보는 모습이 기특합니다. 엄마가 보고 싶지 않냐고 하니 당연히 보고싶다고, 그러다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 얘기에서 3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담배 피우시는 모습이 생각난다고 해서 괜히 기특하고 뭉클했답니다. 3살 때면 기억이 안 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대번에 자신을 안아주셨던 것까지 기억난다고 어른스럽게 말했습니다.
성아는 참 귀엽습니다. 속마음을 잘 안 여는 듯, 낯을 가리는 건지 몸이 피곤하여 불퉁거리는 건지 긴가민가하게 만들다가도 어느새 이런 저런 말을 걸고 대화를 이어나가고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을 배려하는 모습이요. 전자 사전으로 친구들과 노래도 듣고, 영상도 보고, 스피킹 테스트 공부도 하고.. 시험을 보느라 전자 사전을 잠시 제출하라고 했더니 집에서 챙겨줬다며 지퍼백에 전자사전을 소중히 담는 정성이! 레벨 테스트를 제일 먼저 마치고 시험지를 제출한 것도 이렇게 영어 공부를 생활화해서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현지는 언뜻 수줍음이 많아보이지만 그렇다고 낯을 가리거나 몸을 사리는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테스트가 어땠냐고 하니 씩 미소를 짓는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습니다. 꼼꼼하고 깔끔한 성격으로 생활을 잘 해나가고 있어 지켜보고 있자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학생입니다. 잠옷을 입고 있다가 티셔츠를 받으러 움직이게 되자 얼른 모자를 눌러써서 이미지를 관리하는 센스까지!
수빈이는 지아와 친해져서 오래된 학교 친구와 다름없이 수다도 떨고, 공부 얘기도 합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는 사소한 면에서부터 의젓하게 동생들을 챙기고 말 잘 듣는 모습이 제가 아이들을 돌보는 데 한시름을 놓게 하는 든든함을 주니 고맙고 기쁩니다. 수빈이와 같은 빌라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 여간 소중한 인연이 아닌지 혼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아는 말을 걸고 다가가보니 좀 새침한듯 보였던 첫인상과는 다르게 굉장히 따뜻하고 섬세한 성격의 아이더군요. 자기보다 나이어린 동생들을 수빈이와 함께 먼저 챙기고, 저 못지 않게 사리 분별을 옳고 빠르게 해내는 걸 보면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저와 함께 지낼 아이들 중 가장 언니라 그런가 대화가 잘 통하고 친해지기 위한 놀리는 말, 잠옷이 귀엽다던가 하는 말을 슬쩍 슬쩍 던지면 귀엽게 반응합니다.
몇몇 아이들은 아무래도 피곤했던 모양인지 수다를 떨다 자기들도 모르는 새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나머지 아이들은 친구들을 깨우지 않는 선에서 낮은 목소리로 조용 조용히 얘기했고요.
아침은 서양식, 점심과 저녁은 한식이 부페식으로 나왔습니다. 아침에는 입맛을 좀 못찾는가 싶더니 점심을 지나 저녁을 먹으면서는 식성을 어느 정도 찾아 그릇에 밥이며 반찬을 넉넉히 담아 말끔히 비웠습니다. 틈틈히 어머니들께서 챙겨주신 레모나, 씹어먹는 캔디, 비타민 같은 걸 절 주기도 하고 친구들 주기도 하면서 먹기도 하고요.
9시 무렵에 외부 활동에 입고 나갈 애크미 티셔츠와 각자 레벨 테스트 결과에 따른 책을 배부 받았습니다. 한 명씩 확인해서 한국 이름과 영어 이름을 적게 했습니다.
1대 1, 1대 4 수업 시간표를 보더니 스파르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며, 8주에 왔다면 큰일날뻔 했다며 엄살을 피우기도 했지만 바로 책을 챙겨서 가방에 집어넣는 태도는 말과 다르게 제법 의젓하고 똑부러졌습니다.
간식도 먹었습니다. 매번 메뉴는 다르게 나올 텐데요, 아이들이 식당을 연 빌라로 이동해 거기서 음식을 먹습니다. 물통을 들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물통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사총사들은 제가 물통을 챙겨 다니라고 그리 말할 때는 목이 안 마르다며 씩 웃더니 막상 물통을 안 들고와 간식 시간에 물통을 못 마시게 된 그제야 휴대용 물통의 중요성을 깨달은 듯 합니다.
도착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아 아직 아이들을 온전히 파악하고 이해했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열심히 그들과 가까워지고 매 소중한 시간에 함께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자신들의 최대한, 최선으로 빠르게 적응하고 있고요. 서먹했던 모습이 언제였나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한데 어울려 웃음소리를 내는 모습들을 보며 단순히 추억이라고 일컬어질 것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이들과 함께이기에 느끼고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들을 쌓아가는 앞으로의 나날들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남은 날들 궁금하신 점 없도록 자세히, 흥미진진하게 써내려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일 일기에서 또 뵐게요!
댓글목록
강지원님의 댓글
회원명: 강지원(jhkang11) 작성일
선생님의 글만 보아도 아이들과 그곳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건강하고 즐거운 캠프생활이 되길 바라며..홧팅!!!
강지원님의 댓글
회원명: 강지원(jhkang11) 작성일
선생님의 글만 보아도 아이들의 모습과 그곳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과아이들 모두 건강하고 즐거운 캠프생활이 되길 바라며...홧팅!!!
이재령님의 댓글
회원명: 이재령(doolph3) 작성일
안녕하세요... 재령맘입니다.
어찌나 궁금하고 걱정이 되던지 휴~~~~
회원 가입도 못하고 아이 이름으로 들어와 출근 전에 잠깐 읽고 있습니다. ㅋㅋ
선생님의 자세한 설명으로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느껴집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자아자 홧팅!!! 입니다.
인솔교사님의 댓글
회원명: 1161102pdh(9) 작성일
재령이 어머니 / 도착한 새벽에는 간단히 닦게만 시키고 바로 재워 첫 다이어리까지 기다린 시간이 기셨어요. 많이 걱정되고 그 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셨으리라 여겨지네요. 앞으로는 건너뛰는 일 없이 일기가 쓰여질테니 일기 통해서 멀리서나마 재령이의 하루를 함께하시면 될 것 같아요.
지원이 어머니 / 현장 분위기, 상황을 자세하게 전해 어머님 궁금하신 점 최소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들 건강하게 잘 챙기겠습니다. 이제 시작했으니까요,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어머님들 감사드립니다.
최규진님의 댓글
회원명: 최규진(jim0929) 작성일
최지아엄맙니다. 선생님의 상세한 내용에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감사드리며, 계속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